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나라의 베트남 원정 (문단 편집) === 선동 전투 === 원나라 군은 나누어 진격을 시작했다. 제 1로는 총사령관인 토곤이 지휘했는데 규모가 커서 일부를 나눠서 이동했다. 토곤 자신은 아리크 콰야와 함께 닌민(宁明)에서 록처우(祿州)로 향했고 볼콰다가 함선을 이끌고 이동하며 온처우(溫州)에서 낭산(諒山)으로 향했으며 사타르타이와 이방헌이 나머지 군을 이끌고 록빈(縣祿)에서 선동(山洞)으로 진격했다. 쩐 구옥뚜안은 가장 중요한 토곤의 1로를 막기로 했다. 제 2로는 나시르 웃 딘이 이끄는 군으로서 [[운남|운남(雲南)]] 일대에서 차이강(齋江)을 따라 다이 비엣 영토로 진입했다. 다이 비엣에서는 제 2로를 천 태종의 6번째 아들이자 소문왕(昭文王)이었던 쩐 냣두앗(陳 日燏)이 맡기로 했다. 제 3로는 점성국 정벌의 일등공신이었던 쉬게튀가 이끌며 점성에서 다이 비엣을 향해 진격했다. 첫 전투는 깔리(可里)의 계곡에서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쩐의 병사들은 패배했고 장수 '도비'와 '도후'가 사로잡혔으며 이내 쩐의 지원군과 마주쳤으나 되려 그들을 격퇴하고 지원군을 지휘하던 장수 '쩐삼'까지 사살해 버렸다. 깔리 전투 이후 5일 만에 토곤이 지휘하는 대군이 록처우로 밀려왔고 빈처우(永州), 티엣르옥(鐵略), 치랑(支棱)을 한번에 공격했다. 1285년 2월 2일, 원나라 군대는 쩐 왕조의 군대가 모여 있는 노이방을 맹렬히 공격했고 결국 쩐군 장수들 중 도안타이가 전사했으며 쩐 구옥뚜안은 미리 준비해 둔 배를 타고 반끼엡(萬劫) 일대로 퇴각했다. 이 즈음 쩐 왕조의 귀족이었던 쩐 끼엔(陳 鍵)과 그의 부관이었던 레 탁(黎 崱)은 원나라 군에 항복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매국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